빌린 것은 돌아간다

빌린 것은 돌아간다

급식 데일리
8월 20일 - 조회수 2 - 추천 0

책상 서랍을 열었는데 내 것이 아닌 볼펜이 나온다. 책장에는 친구에게 빌린 만화책이 꽂혀 있고, 가방 안쪽에서는 체육 시간에 급히 받은 머리끈이 발견된다. 돌려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. 다만 매번 다음에 만나면 하고 넘겼을 뿐이다.

오늘은 금요일이다. 주말이 지나면 개학 준비가 더 분주해지는 학생도 많을 테니, 어쩌면 지금이 빌린 것을 정리하기 가장 덜 어색한 순간이다.

물건은 작아도 마음에는 자리를 차지한다

빌린 물건은 가만히 있는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다. 볼 때마다 ‘아, 이거 돌려줘야 하는데’라는 생각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. 작고 짧은 생각이지만 계속 반복되면 머릿속에 처리하지 않은 일 하나가 남아 있는 셈이다.

특히 방학처럼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 기간에는 시간이 금방 늘어난다. 며칠 빌린 충전기가 몇 주째 책상 위에 있고, 잠깐 읽기로 한 책이 어느새 내 책처럼 익숙해진다. 익숙해졌다고 주인이 바뀐 건 아니다.

완벽한 타이밍은 거의 오지 않는다

사람들은 물건을 돌려줄 때도 좋은 장면을 기다린다. 직접 만나서 건네야 할 것 같고, 늦은 이유도 그럴듯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. 그래서 오히려 더 미룬다.

하지만 필요한 말은 길지 않다. “내가 너무 오래 가지고 있었네. 미안해. 언제 돌려주면 편해?” 이 정도면 충분하다. 당장 만날 수 없다면 사진을 찍어 먼저 연락해도 된다.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생기면 물건은 아직 내 방에 있어도 방치된 상태에서는 벗어난다.

잃어버렸거나 망가뜨렸다면 조용히 숨기는 쪽이 더 곤란해진다. 똑같은 물건으로 다시 구할지, 비용을 보낼지 먼저 물어보는 편이 낫다. 실수보다 관계를 상하게 하는 건 대개 긴 침묵이다.

반대로 내 물건도 떠올려보자

내가 빌려주고 잊은 것도 있을 수 있다. 이때 “내 거 왜 아직 안 줘?”라고 시작하면 작은 물건이 갑자기 큰 싸움처럼 느껴진다. 대신 필요한 날짜를 붙이면 말이 훨씬 선명해진다.

“그 책 개학하고 쓸 일이 있어서 다음 주까지 받을 수 있을까?”

재촉이 아니라 일정 공유에 가까운 문장이다. 상대도 언제까지 움직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.

오늘 서랍 하나와 가방 주머니 하나만 살펴보자. 내 것이 아닌 물건이 나오면 옆에 따로 모아두고, 연락 한 통을 보낸다. 빌린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은 물건 정리 같지만, 사실은 미뤄둔 약속을 끝내는 일에 더 가깝다.

월요일의 가방은 조금 가벼워지고, 친구를 만났을 때 피하고 싶던 눈맞춤도 하나 줄어든다. 주말을 시작하기에 꽤 괜찮은 정리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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